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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0일 올린 글입니다)

‘인연’이란 단어는 사람을 이유없이 설레이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인생에서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이 생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 때가 되면 이른 봄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그렇게 삶의 매 순간 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마치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최인호 씨는 2001년 MBC 드라마로 방영됐던 <상도>의 원작소설 저자다. 상도라는 소설을 읽은 뒤로 9년 만에 수필집을 통해 작가를 다시 만나게 됐다. 어찌보면 책 한 권과의 만남도 인연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수필집은 그 제목 만큼이나 훈훈하다. 어머니, 아내, 절친한 배우 안성기, 작가가 존경하는 이해인 수녀에 대한 단상들은 읽기만 해도 추운 겨울 군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가슴 한 구석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여러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 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 한 가지 이야기를 꼽자면 작가가 즐겨 찾는다는 작은 칼국수 집에 대한 내용이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지금은 무척이나 유명해졌다는 그 칼국수집은 대기업에 다니던 한 아들이 어머니의 소원수리를 위해 선물해 준 것이라고 한다. 어느 날 식당 문을 연지 한참 만에 첫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아들은 부푼 마음으로 주문을 받아 어머니가 만드는 칼국수가 완성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어머니는 다 된 칼국수를 맛보더니 갑자기 8인분을 쓰레기통에 모두 버리고 새로 국수를 삶기 시작했다고 한다. 음식을 기다리던 손님들은 항의를 하기 시작했고 아들은 애가 타들어 갔다. 그런데 어머니는 또 다시 완성된 칼국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급기야 참다 못한 손님들은 식당을 나가고 딱 한 손님만 남게 됐다.

한참이 지나서야 어머니는 정성스럽게 만든 칼국수 한 그릇을 내왔고 그 맛을 본 손님은 연거푸 감탄을 하며 이처럼 맛있는 칼국수는 생전 처음 먹어본다고 극찬했단다.

결국 그 식당은 얼마 안가 대통령이 찾을 정도로 유명해졌고 사장이 된 아들은 지난 날을 회상하며 고집스러웠던 어머니의 정성이 성공의 비결이었다고 작가에게 말해주었다.

작가가 이 이야기를 전하며 덧붙인 말이 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상 진심이란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참 맞는 말이다. 내가 인간관계 때문에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진심은 언젠가 통할 거라는 말을 되뇌이는데 이 글을 읽고 그 믿음이 더 단단해졌다.

인생은 곧 인연의 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성공적인 삶이란 물질적인 풍요보다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남기고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때론 그런 삶이 미련하거나 바보 같아 보이기까지 하더라도 국수 한 그릇에 온 정성을 쏟았던 아주머니의 칼국수 집이 ‘대박’ 났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리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소설가의 수필집을 읽은 건 처음이었다. 읽는 내내 “글을 참 맛깔나게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양념이 혼합된 닭요리가 아니라 신선한 야채를 넣고 화학 조미료 없이 푹 고아 낸 삼계탕 국물 같다고나 할까.

곳곳에 배치된 백종한 작가의 따뜻한 사진들이 수필집에 감칠 맛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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