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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6일에 올린 글입니다)

일요일 저녁 11시 48분.

“부르르르”

친구에게서 문자메시지 한 통이 날라온다.

[OO야. 자니? 야. 내일 회사 갈 생각하니까 잠이 안와. 어떡하지? ㅠ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엎드려서 책을 뒤적이던 나는

[시간 빨리 가는거 알지? 내일 주말도 빨리 올거야. 그러니 어여 자.]

라는 답문으로 친구를 달래본다. 친구는 내심 포기한 듯 자려고 누웠는지 더이상 회신은 보내지 않는다. 임시방편으로 친구를 재웠지만 나 또한 내 대답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1. 직장인 사춘기 증후군

국어사전 정의에 따르면 직장인 사춘기 증후군은 “직장 생활에 대한 회의감으로 뚜렷한 이유 없이 직장 일에 불만을 갖는 증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2008년 취업정보업체 잡코리아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가운데 85%가 이 사춘기 증후군을 앓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직장생활  ‘3년 차’ 가 가장 큰 고비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그렇다. 나는 바로 그 3년 차 직장인이다.

 
2. 3년 차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3년 차 직장인이라고 한다면 이제 사회 생활에 제법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오늘 저녁 시간되는 사람?”이라는 선배의 소집 명령에 얄밉지 않을 만큼 능구렁이처럼 회사를 빠져나올 수 있을 만한 필살기 하나쯤은 체득한 ‘그들’이다. 선배의 불합리한 지시에 금새 얼굴이 붉어져선 “선배님.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무모하지만 용기있게 의사를 피력하던 풋내기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일단은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이 본능적으로 먼저 튀어나온다. ‘어차피 상사의 뜻대로 될 것이고 말이 길어지면 퇴근 시간만 늦어질 뿐이다’라는 강한 믿음은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직장인 43계명 4조항 ‘포기하면 편하다’와 일맥상통한다.

그들은 조직이라는 험난한 전쟁터에서 그 동안 익혀 온 처세술로 신입사원 때 보다는 패배주의자적일지 모르지만 어쨌건  ‘리스크(risk)’만큼은 최소화한 직장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 발생한다. 안락하고 익숙한 반복적인 일상에 취해있다 정신을 차려보니‘헉’ 어느새 30대 진입로에 서 있다.

“그 동안 난 뭘하며 산거지?” “학창시절 내가 원하던 그 꿈은 어디로 간걸까?” “지금처럼 앞으로도 평생 이렇게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는게 인생의 전부인가?” 라는 온갖 질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내 자신에게 답을 내놓으라고 독촉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더 불안한 건 정답을 말해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건 지문 다섯개 짜리 객관식 문제도 아니고 누군가 모범답안을 제시해 주는 통합형 논술 문제도 아니다. 나만의 정답을 스스로 터득해야만 한다. 그래서 고독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목적없는 일상이 가져다 주는 공허함이 한없이 밀려온다.


3. 직장인 사춘기 증후군에서 탈출하기 위한 나의 몸부림

나는 하루라도 빨리 사춘기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악기도 배우고 운동도 하고 영어공부도 했지만 잠깐 바람을 쐰다고 나아질 문제가 아니었다. 사춘기의 늪에 빠진 원인부터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느끼는 불안감은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대학 전공과 꼭 맞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만은 난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경제,사회 문제에는 한참 뒤떨어진 ‘공대 여자’였다. 그런 내가 지식과 정보를 유통하는 인터넷 신문사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무식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모르면 공부해야지. 그런데 어떻게?

결론부터 말하지면 나는 ‘책읽기’를 해결책으로 선택했다.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으니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은 출퇴근길에 책을 읽는 것 밖에 없었다. 알아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기에 다양한 분야를 가장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학습도구는 책 뿐이었다. 이런 사연으로 학창 시절 독후감 숙제로 나오는 필수 도서들, 전공도서나 킬링타임용 일본 소설을 빼면 잘 읽지 않았던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일주일에 한 권씩 한달에 최소 5권, 일년에 적어도 50권의 책을 읽기로 목표도 세웠다. 책을 읽고 나면 간단하게나마 블로그에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4. 서른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

그런 결심을 했을 즈음 ‘직장인’과 ‘책읽기’라는 단어가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프롤로그를 펼치니 <서른살, 직장인 사춘기를 책으로 극복하다>라는 제목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 내 고민을 듣고 있다가 지름길을 알려주고자 한 것 마냥 딱 떨어지는 내용이었다.

공동저자인 한겨례 신문의 구본준 기자와 김미영 기자는 어느 누구보다 책읽기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장본인들이다. 비슷한 직군에 종사하고 있기에 그분들의 소싯적 이야기는 지금 내 고민과 거의 일치했다. 

구본준 기자는 ‘책읽기’로 인생 역전을 이뤘다고 고백했다. 그는 막연한 불안감, 변화하고 싶은 욕구가 뒤엉킨 서른살의 어느 날,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다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사춘기의 늪에서 탈출한 것은 물론이고 책을 소개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출판 담당기자의 꿈을 이뤘다고 한다.

김미영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사람들은 기자니까 으레 국내외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꿰뚫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 기대가 부담감을 안겨줬다고 한다. 그 ‘지식 강박증’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의 나처럼 1년에 책 50권을 읽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김 기자는 본인의 경험담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직장인 가운데 책읽기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책벌레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구본준 기자는 책읽기를 해야만 하는 15가지 이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사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어야 한다’는 한 가지 내용이 반복된다. 저자는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가 아니라 ‘책을 읽지 않으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것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꾸준히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독서가 실질적으로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슬럼프에 빠진 직장인들은 자기 계발을 위해 몸부림 친다. 영어학원도 등록하고 헬스 클럽도 다니고 새로운 자격증 시험에 도전한다. 하지만 저자가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진정한 자기 계발은 1차원적인 행위가 아니라 ‘사고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데 있다. 

생각의 폭을 넓혀 종전까지 내가 해오던 습관을 온전히 바꾸지 못하면 드라마틱한 인생 역전을 이루기 힘들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평생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 것이다. 직접 경험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하루에 절반을 회사에 묶여 있는 직장인에겐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 최선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서울대 총장을 역임한 정운찬 총리, 저명한 국문학자로 알려진 이어령 교수,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 작가 이지성 씨, 독서광으로 알려진 유명 건축가 승효상 씨의 인터뷰 전문이 담겨져 있다. 이들은 책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산 증인들이다.  

이들처럼 나도 열심히 책을 읽고 묵묵히 글을 쓰면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게 될까? 두 기자분들처럼 먼훗날 성공기를 담은 책을 낼 수 있게 될까? 모처럼 피어오르는 기분 좋은 상상이 온 몸에 힘찬 기운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리고 난 책장을 덮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모든 길은 책읽기로 통할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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