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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여자 인생에 마이너스일까?

나는 줄곧 “여자의 인생에서 결혼은 마이너스”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듣고 자랐다. 아버지는 내가 주관이 뚜렷한 여류 작가들처럼 자라주길 바랬으며 화장대 앞에서 외모를 가꾸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사회운동에 더 관심을 갖길 바라셨다.   

아버지는 내가 뉴질랜드 배낭여행을 하던 중 홀로 트랙킹을 하러 간다고 안부전화를 드렸을 때 “위험하니 하지 말라”는 말 대신 “야생동물 조심해라”라고 조언하신 분이며 “번지점프를 한다”고 했을 때 “스카이 다이빙은 어떠냐”고 부추기신 분이다.

신체 건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 되는 것과 결혼 여부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아버지께선 내가 여자로서보다 한 인간으로서 원치않는 희생을 강요받지 않은 채 꿈을 성취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아버지 머리에서 검은 머리카락보다 흰 머리카락의 수가 더 많아질 즈음 아버지께서 나의 결혼 문제를 슬슬 걱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어머니의 6주기 제사 때 축문을 읽으시던 아버지께선 급기야 나지막하게 “여보. 우리 은빈이 서른 안에는 시집가게 당신이 좀 도와주구려”라고 예고 없는 충격 발언을 하셨던 것이다.

뒤에서 듣고 있던 나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아버지, 1년 반 남았어요. 그건 하늘에서 어떻게 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라고요.”라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여자의 나이

결국 아버지께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물었다.

“아버지. 여자 인생에 있어서 결혼은 마이너스라고,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라고, 세상에 성공한 여자들은 미혼이 더 많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당시 난 힐러리는 클린턴하고 결혼했잖아요.라고 반박했었다.)”

아버지께선 대뜸 “(그런 말을 한 것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어차피 니가 결혼을 선택할 거라면 한살이라도 어릴 때하는게 너한테 좋으니까 하는 소리야.”라고 답하셨다.

한살이라도 어릴 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산모와 아기의 건강에 훨씬 유리하며 자식이 대학 갈때까지 뒷바라지를 하기에 여러모로 더 낫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스물아홉살이란 나이는 어쩌면 오묘한 경계선에 서 있는 셈인데 내일 당장 사고쳐서 결혼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일찍 결혼했다고 말하지 않을 나이이기도 하지만 대놓고 결혼 걱정을 하기에는 “넌 아직 명함 꺼낼 생각하지 말라”는 미혼의 언니들이 주변에 아직은 많이 남아있을 나이이기 때문이다. 

스물아홉살이 되니 친구들은 극명하게 둘로 나뉜다. 대학 때나 신입사원 때 만난 상대와 몇년 연애하고 27~8살에 결혼한 친구들과 성격차이와 집안반대 등 갖가지 이유로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고 20대 후반에 싱글이 된 친구들이다. 내 주변인들만 보자면 그 비율은 대략 1:3 정도다.

나를 비롯해 20대 후반에 싱글이 된 친구들 가운데 일부는 더 늦기전에 차라리 공부나 더 해야겠다며 유학 준비를 시작하기도 했고 보장된 미래를 위해 국가고시 준비에 투신하기를 결심하기도 한다. 나 역시 자기계발에 열을 올리자는 쪽을 선택해 그렇게 스물여덟살을 보냈고 순식간에 스물아홉살이 됐다.  

직장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주변인들은 어느덧 아홉수에 접어들면서 직장인으로서 온전히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일주일 가운데  1.5일을 번번히 실패하는 소개팅 대신 차라리 스펙이나 높이자는 쪽으로 확실히 추가 기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기계발에 대한 열의는 동경하던 골드미스 언니들이 술 한잔 걸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보내는 “외롭다”는 문자를 받는 순간 조금 주춤하기도 한다.  

삶에 대한 투지를 꺾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다. 한때는 영원히 나밖에 없다던 소울메이트가 어느날 잘나가는 증권맨이 되어 돌아와 9살 연하의 여자친구를 자랑을 하고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성친구는 “힘내. 넌 더 좋은 사람 만날거야”라는 위로 대신 “그 녀석이 진정 다 가진 놈이다”라며 “나는 9살 연하랑 말이나 한번 해봤음 소원이 없겠다”는 식의 농담으로 듣는 순간 “아. 이제 나는 스물아홉이구나”라는 ‘현실’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된다.

이제 밤잠 설치며 미친듯이 공부해서 토익에 만점을 맞고 국가고시에 합격해 플래카드에 이름을 올린다고 한들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내 앞에 놓여져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설 연휴 시집가라는 말 대신 아버지가 해주신 조언
 

설 연휴 할머니 댁에 다녀오는 길에 나는 아버지에게 “결혼이 싫은 게 아니라 소개팅에 나가서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내가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요즘 여자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도 잘 알려드렸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던 아버지는 딱 잘라 이렇게 말했다.
 
“항상 받으려고만 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때로는 배려가 사랑이기도 하지. 연애든 결혼생활이든 서로 받으려고만 한다면 결국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너에게 뭔가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보다 니가 무언가 주고 싶은 그런 사람을 찾도록 해”

“그리고 무엇이 됐든 니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10년만 미친척 하고 열심히 해봐. 그러면 부는 따라올테니까.”

아버지의 조언은 내 머릿속에 가득차 있던 ‘결혼,사랑,일,성공,나이먹는 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나마 교통정리 해주었다. 아버지는 덤으로 연휴기간에 한번 읽어보라며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려다 주셨다.

<딸에게 전하는 12가지 부의 비법>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월가의 전설로 남아있는 유명한 펀드매니저 짐 로저스라는 사람이 쓴 책이다.  

이 책의 목록을 살펴보면,
1.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지 말아라
2.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거라
3. 상식은 그렇게 상식적이지가 않다
4. 세계로 나가 넓은 세상을 보아라
5. 철학을 배우고, 생각하는 법을 깨우쳐라
6. 이제 중국의 시대가 온다. 중국어를 배워라
7. 역사를 배워라
8. 너자신을 알아라
9. 변화를 인지했으면 그걸 받아들여라
10. 미래를 바라보아라
11. 서류에 편승하지 말아라
12. 행운의 여신은 꾸준히 노력하는 자에게 미소 짓는다

나는 책을 받아들고 잠시 생각해 빠졌다.

‘차라리 돈이나 벌라는 소리신가?’

역시 쉬는 날이 많아지면 생각이 많아지나 보다.

이제 설 연휴도 다 갔고 출근을 해야할 월요일이 돌아왔다. 온갖 고민들 속에서 이 스물아홉살은 일단 아무생각 말고 다시 꿈을 향해 속력을 내보기로 한다. 동시에 인연을 기다려보기로, 아니 찾아보기로 하면서…  

  1. nana at 2011.02.06 22:33 [edit/del]

    글을 너무 잘쓰셨네요. 저도 20대 후반 여성인데 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
    아버지가 주셔다느 책. 저도 하번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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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프리라이더 at 2011.02.08 00:07 신고 [edit/del]

    은빈씨 길면서짧고 간결하면서도 깊히있는 포스트잘 읽었어요 결혼은... 내 의지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길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난 D.com. 영상팀 광희에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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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Phoebe at 2011.02.11 23:26 [edit/del]

    홍콩 다녀갔는거 알면서 마실이 늦었죠?
    게임에 빠져서 제정신 못차리고 있다 오늘 오후부로 끊었어요. 하하...
    온라인 게임 말고 컴퓨터 저장해서 하는 게임이요.^^
    결혼은 적령기가 없고 진짜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그때가 결혼 기회인것 같아요. 고 기회 잘 잡으세요. 그럼 난 홍콩 이야기 보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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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만달팽이 at 2011.02.12 21:13 신고 [edit/del]

      맞는 말이세요~ 저도 그래서 최근에 이런 저런 잡념을 갖고 있다가 생각을 많이 정리한 상태예요..^^ 결혼은 빨리 하는 거보다 인연을 만났을 때, 그 때에 하는게 좋을 것 같더군요. 참 외국인 남편하고 사는건 어떤 기분일까도 궁금해요!

  4. 25단기간근로자 at 2011.10.14 11:00 [edit/del]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아버지도 멋있으시네요 꿈을 찾느라 아직도 방황중인 저는 소개팅생각에 고민만 되네요. 25이되고 아직도 무직인 스스로를 보면서 앞으로의 연예며결혼이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드네요 저도 멋진 인생의 선배들 이야기를 듣고싶습니다.ㅇ. ...의의 선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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