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Log

심형래 감독이 <라스트 갓파더>로 돌아왔다. 개봉 둘째날 기대하는 마음과 불안한 마음을 동시에 안고 영화를 보러 다녀왔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 일단 마음을 추스리고 몇자 적어보자.



슬랩스틱 코미디계의 대부 ‘영구’

필자는 소위 말하는 영구세대에 포함된다. 어린시절 ‘영구’나 ‘맹구’가 등장하는 개그프로를 보면서 배꼽 빠질 듯 웃었던 때가 있었다. 친구들과 한 집에 모여서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 비디오를 빌려봤었고 남자아이들은 앞니 한쪽에 김을 붙이고 ‘영구 읍따~’를 외치면서 개그 본능을 뽐내기 일쑤였다. 당시만 해도 영구라는 캐릭터는 남녀노소 할것 없이 모두에게 사랑받던 슬랩스틱 코미디계의 대부였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여 년만에 돌아온 영구는 내게 웃음도 주지 못했다. (영화 마지막 부분이 나오는 총격전 만큼은 나도 조금 웃었다. ) 그저 한가지 의문만을 남긴 채. 영구는 왜 뉴욕으로 가야만 했을까.


뉴욕에 간 영구 - 미스터빈이 서울로 온다?

이 영화는 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옛 뉴욕을 재현해 낸 모습은 여느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멋졌다. 솔직히 말해 기대 이상이었다. 하비 케이텔을 비롯한 조연들의 활약 덕분에 시대적 배경과 스토리는 그럭저럭 잘 어울릴 뻔 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놓여진 영구는 마치 파스타와 피자 사이에 놓여진 깍두기처럼 한데 섞이지 못했다.

해외파 슬랩스틱 코미디 배우 미스터빈을 떠올려보자. 미스터빈이 한복을 입고 민속촌 셋트장을 누비며 알아듣기 힘든 한국말로 몸개그를 펼친다고 상상해보자. 10분 분량의 꽁트 정도면 충분할 듯 하다. 영화는 1시간 반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극중 현실에 감정이입을 충분히 해야하는데 미스터빈이 더듬더듬 한국말로 어색한 연기를 한다면 설사 스토리가 탄탄 하다고 하더라도 관객이 영화에 집중하는데 크게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영구가 한국에서 온 캐릭터라는걸 감안하더라도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는 영어 발음은 참기 힘들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기 보다 영구라는 캐릭터가 영어 대사 연기에 충분히 감정이입을 못시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거다. 결국 그런 영구의 연기가 웃음을 유발시키기 보다는 영화의 집중도를 해치기만 했다.


반전 없는 코미디

영구는 조금 모자란 거지 몸이 불편한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 속에서 영구는 한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던지 걸을 때 똑바로 걷지 못하는 등 다소 과장된 우스꽝스러움이 웃음을 넘어서 동정심을 유발하게 했다. 나에게 영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쓰러운 존재였다.

영구가 양복만 입은 것이 아닌 <프렌즈>의 조이처럼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알고보면 골때리는 조금 모자란 캐릭터로서의 반전들을 조금 심어주었다면 관객들은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하는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영화가 막이 오르고 난 뒤부터 끝날 때까지 한 남성이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정도였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며 극장 안이 밝아질 때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웃음소리가 나오던 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떤 사람일까 몹시 궁금했다. 

전세계 68억 인구 가운데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양한 인구 수 만큼이나 저마다 생각하는 바도 다 다를 것이다. 그러니 내가 재미없게 봤다고 한들 그게 정답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에겐 잊지못할 추억의 영화로 자리잡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 영화는 12세 관람가 이상이며 나는 세상의 때가 적당히 묻은, 서른을 앞둔 20대 후반의 여성일 뿐이니까.

남들이 뭐라하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심 감독의 도전 만큼은 본받을 만 하며 가재가 게 편이라는 말처럼 심 감독이 미국에서 인정받고 흥행도 거두길 바라고 싶다.

단, 내가 바라는 소망이라면 심형래 감독이 앞으로 영구라는 캐릭터로 연기에 도전하기 보다 감독이라는 역할에만 조금 더 충실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sub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