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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동료와 주말 근무를 마치고 남부터미널역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퓰리처 수상작 사진전’을 보러 갔다. 헌데 이게 웬일? 대기인원만 400명. 저녁 7시가 마지막 입장인데 30분 넘게 기다리다 전시실에 입장해도 작품을 다 보지도 못하고 나와야 한단다. 1만원이 넘는 입장료를 내고 ‘날림’으로 관람하기 싫어서 예술의 전당으로 오는 길에 봐두었던 분식점에서 요기나 하기로 합의를 봤다.  


남부터미널역 5번 출구에서 200m쯤 걸어내려오다 보면 깔끔한 인테리어의 분식집이 하나 나온다.  

우리는 조리 공간을 합쳐 3평 정도 되는 협소한 가게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가게는 회전식 초밥집처럼 바테이블 약 6석과 우리가 앉은 4인 자리 하나가 전부였다. 아마도 분식은 테이크아웃을 많이 해갈테니 내부 공간이 협소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메뉴는 간단하다. 분식점 대표메뉴 떡볶이, 튀김, 순대, 오뎅, 오다리(?), 우동,그리고 아이스케키.
메뉴는 3000원 미만.

“떡볶이 1인분, 튀김 1인분, 순대 1인분에 오뎅 1개요~”

여자 둘이서 너무 많이 시킨 것 아닐까 내심 살들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처음 온 음식점에서 이정도는 시켜야 한다’며 서로를 위로했다.

다행히 처음 나온 떡볶이는 우리를 안심시켰다.
떡볶이 떡은 생각보다 가늘었고 전체적으로 양은 많지 않았다.



맛은 보통. 생각보다 맵지 않았으며 뚜렷하게 맛있다기보다 익숙하고 편한 맛이었다.

순대는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하지만 양보다 더 기가막혔던 것 순대를 입안에 넣었을 때였다.

보통 옛날 순대집 순대가 아니고서야 흔히 길에서 사먹는 순대는 당면과 순대껍질이 따로 놀아
입안에 남은 껍질을 마지막까지 질겅질겅 씹다 삼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곳 순대는 당면과 껍질이 온전히 입안에서 어우러지는 느낌, 한입 두입 씹다보면 껍질이 녹아 없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 순대를 먹고 나서야 비로소 이 가게가 보통 식당이 아님을 알아챘다.




그 다음으로 나온 오뎅. 오뎅 국물에는 반죽 튀김이 떠 있었다. 우동 먹을때 국물에 떠 있는 그것들.
오뎅 국물을 한 숟갈 맛본 후 다른 분식점에서 먹던 국물과 확연히 다름을 느꼈다. 

확실히 인공조미료 맛이 덜 느껴졌으며 무 육수와 국간장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의 어설픈 미각은 그리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느낀 감칠맛이 인공조미료 맛은 아니었다. 다소 투박하고 서툰 국물 맛으로 시원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이었다. 나와 동행했던 동료도 같은 생각이었다.



튀김은 5개 2500원. 하나에 500원씩인 셈이다. 튀김도 양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맛은 있어 보였다.
반죽에는 파슬리 가루가 섞여 있었다. 초록색 파슬리 가루가 노릇노릇한 튀김 반죽을 돋보이게 했다.

김말이, 새우, 고구마, 야기만두, 오징어.

튀김은 바삭했고 반죽은 얆았다. 분식점 튀김보다는 일식집에서 우동정식 메뉴에 딸려나오는 튀김처럼  튀김 반죽은 얇았다.


우리는 우연히 들뜬 떡볶이 집에서 예상 밖의 음식맛으로 기분이 한껏 들떴다. 
그러다
왼쪽 벽에 쓰인 글귀를 읽었다.

자네 집에 밥 잡수시러 오시는 분들이 자네의 하느님이여.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야 혀.
장사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은 일절 할 필요 없어.
하느님처럼 섬기면 하느님들이 알아서 다 먹여주신다 이 말이야
.

집에 와 찾아보니 이 글을 쓴 장일순 선생님은
90년대 생명운동을 전개했던 시민운동가였고 국회의원도 지냈다고 한다.

근데 저쪽에 있는 글은 또 뭐지?

                                            <올리는 말씀>

일. 저희 국대 떡볶이는 하늘이 두 쪽 나도 튀김용 기름은 매일 새 기름으로 사용합니다. 
    (1일 2회 교체)

이. 튀김은 떡볶이와 범벅하여 드리지 않음을 널리 양해해 주세요. 튀김은 눅눅해지고 떡볶
    이 맛도 변합니다.
(떡볶이 양념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삼. 튀김은 두 번 튀겨야 더욱 바삭하고 풍미가 더해집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양해해
     주세요.

사. 국대 가족이 되어주세요. (구매 금액의 10%를 적립해 드립니다.)
오. 아이스케키 수익금 전액은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소중히 쓰겠습니다.
육. 모든 식기, 집기는 매일 소독하는 등 안전한 먹거리 제공을 위해 위생 관리에 만전을 기
     하고 있습니다.

칠. 저희 국대 떡볶이를 찾아주셔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국대떡볶이 전 직원 일동

떡볶이가 그리워질 때마다 한번씩 분식집을 찾곤 했지만 이런 분식집은 처음 이었다.
요즘 식으로 하면 ‘개념으로 완전 무장한’ 분식집이었다.

먹거리 안전에 만전을 기한다는 공약처럼 냉장고에는 세스코 점검 표시가 부착돼 있었다.

정겨운 아이스케키 박스에는 제과점에서 흔히 보는 딱딱한 막대 아이스크림이 들어있었다. 메론, 녹차, 커피, 팥 등 맛은 여러가지. 보통 제과점에서 1000원에 팔기도 하는 이 아이스크림을 이곳에선 500원에 판다. 게다가 불우이웃 돕기에 쓴다니 참 기특한 식당이다 싶었다.

기분좋게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주방 안쪽에 걸린 사훈과 점훈이 눈에 띄었다.

사훈 :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점훈 :
아끼면 망한다.



동료와 난 음식점을 나서며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사진전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꼭 전시회를 하나 관람하고 돌아가는 것 마냥 ‘영혼의 허기’를 가득 채운 느낌이랄까.

신문과 방송에서 먹을거리에 대한 언짢은 뉴스를 쉼없이 접한다. 불친절한 서비스는 약과다. 남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되파는 건 놀랄일도 아니다. 식용이 아닌 얼음을 냉면 육수에 집어 넣어서 파는 식당도 있다는데 “사람 먹는 걸로 장난좀 쳤기로 뭐가 그리 대수냐”며 “억울하다”고 땅을 칠 식당 주인들도 줄을 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남달랐다. 운영자의 올바른 정신이 느껴졌다.

물론 정말로 새 기름을 하루에 두번 교체하는지 아이스크림 판매수익을 불우이웃 돕기에 쓰는지 확인해 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믿지 못하겠다고 따지고 들면 우린 얼마나 불행한 세상에 사는것인가.

공식 홈페이지가 없어서 정확히 몇개 매장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지만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남부터미널역 외에 다른 지점 방문 후기가 많이 검색된다.

‘국대떡볶이’의 국대(國代)는 국가대표란 뜻이란다. ‘국대떡볶이’가 앞으로도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식당경영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분식점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1. Phoebe at 2010.07.25 01:32 [edit/del]

    멋진 분식집이네요. 짱 맘에 들어요. 갈수없는게 원통합니다. 하하하...
    아이구 먹고 싶어라~~~ 야식시간인데.....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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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roro at 2010.07.27 20:30 [edit/del]

    전 국대떡볶이 좀 매웠어요.
    그래도 떡이 야들야들해서 맛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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