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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 때아닌 불면증으로 열흘 넘게 고생한 적이 있었다. 눈을 감고 누우면 잠이 드는가 싶다가도 새벽 2시만 되면 영락없이 깨곤 했다. 그렇게 한번 깨면 다시 잠들기가 무척 힘들었다. 처음 며칠은 이러다 나아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밤잠을 설치던 날이 계속되자 일상생활에 지장이 오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불면증의 원인은 부쩍 신경 과민 탓이었다. A형 간염으로 입원했다 막 퇴원한 직후여서 몸도 많이 쇠약해 진데다 같은 입원실을 쓰던 어르신들이 중병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일주일 동안 지켜본 탓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게 된것이다.

그렇게 열흘 쯤 되가던 어느 일요일, 여느 때처럼 클래식 기타 과외 시간이 돌아왔다. 젊은 과외 선생은 이따금씩 클래식 음악을 듣고 감상문을 적어오는 숙제를 내주곤 했는데 그날 선생님이 고른 음악은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이었다. 

낯익은 선율을 들으며 습관처럼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작곡가의 이름을 넣어보았다
 
‘라흐마니노프…어디보자’

작곡가에 대한 설명을 읽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라흐마니노프는 26세 때 신경쇠약으로 고생하다 나달 박사의 자기암시 치료법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 협주곡 2악장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난 곧바로 자기암시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 심리학자 에밀 쿠에가 ‘자기암시’ 치료법을 최초로 도입했다는 내용도 알게 됐다. 퇴근길 서점에 들러 <에밀 쿠에의 자기암시>라는 책을 구입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책을 훑어 보니 저자의 이름만 몰랐을 뿐 평소에 많이 들어오던 내용이었다.

이 책은 에밀 쿠에가 자기암시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곳저곳에 강연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치유한 여러 사례들을 담고 있다.

그 사례들 중에 반복되는 내용이 많아 다소 지루하게도 느껴지기도 했지만 자기 암시만으로 신경쇠약, 불면증, 우울증을 비롯해 신체적 질병까지도 치유했다는 내용들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자기 암시의 핵심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는 인간의 의지보다는 상상이 더 강력한 힘을 가진다고 여겼다.

일례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 갑자기 장애물을 만났을 때 당황하게 되면 그 장애물을 피해야 겠다는 의지보다 저 장애물에 곧 부딪힐지도 모른다는 부정적인 상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러면 실제로 장애물을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 장애물로 향해 부딪히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의지보다는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좋아지고 있다’
Day by day, in everyway, I am getting better and better

그의 치료법은 간단하다. 마음 속으로 자신이 날마다 모든 면에서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되뇌이며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그것을 상상하면 많은 것들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불면증이 깊어진 원인은 ‘반드시 잠을 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내일 일상생활을 잘 할 수 없게 된다’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에밀 쿠에의 이론으로 해석하면 반드시 자야 한다는 의지 뒤에는 ‘잠이 들지 않을 것 같아 몹시 두렵다’는 강박관념이 깔린 것이다.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따끈한 보릿차도 한잔 들이켰다. 나는 자리에 누워 꼭 자야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일단 눈을 감고 즐거운 상상을 해보기로 했다. 

‘때가 되면 잠이 오겠지. 어쨌든 나는 잠이 들거야. 내일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그 뒤는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10분도 채 되지 않아 깊은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단 한번도 깨지 않고 아침이 되서야 일어났다.

수면제라도 처방 받으러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인가 크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자야만 해” 라는 마음을 “곧 잠에 들거야”로 바꾼 것만으로도 열흘 동안 날 괴롭혔던 불면증은 절로 치유가 된 것이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6개월 동안 불면증은 다시 겪지 않았다. 참 신기하게도 말이다.

생각대로 된다는 모 통신사의 광고 문구가 번뜩 떠올랐다. 정말 생각하는 대로 모든게 이루어 지는걸까? 어쩌면 그런 말들이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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